안도현

굴뚝 / 안 도 현

자연을 바라보다 2013. 6. 16. 00:30




굴뚝 

1

                                     - 안 도 현 -





아궁이에서 굴뚝까지는

입에서 똥구멍까지의




비좁고,

컴컴하고,

뜨겁고,

진절머리나며,

시작과 끝이 오목한 길




무엇이든지 그 길을 빠져나오려면

오장육부가 새카매지도록

속이 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밑바닥에 닿는다, 겨우









2



저 빈집의 굴뚝을 들여다보면

매캐한 슬픔이 타는 아궁이가 있을 것 같고, 아궁이 앞에

사타구니 벌리고 앉아 불을 지피는 여자가 있을 것 같고,

불꽃이 혀를 날름거리며 눈가의 주름을 핥을 것 같고,

아이들은 대여섯이나 바글바글 마루 끝에서 새처럼 울 것 같고,

여자는 아이들 입에 뜨신 밥알 들어가는 것 생각하며

가슴을 쓸어 내릴 것 같고,










3



그러나 지금 굴뚝의 비애는

무너지지 않고 제 자리를 세우고 있다는 거




쌀 안치는 소리,

끝없는 잉걸불의 열정,

환한 가난의 역사도

뱉고 토해낸 지 오래 된





저 굴뚝은 사실 무너지기 위해

가까스로  서 있다

삶에 그을린 병든 사내들이

쿵, 하고 바닥에 누워

이 세상의 뒤쪽에서 술상 차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