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백석

칠월백중 / 백석

자연을 바라보다 2015. 8. 28. 01:00





七月백중



                                                                     - 백석






마을에서는 세불 김을 다 매고 들에서

개장취념을 서너번 하고 나면

백중 좋은 날이 슬그머니 오는데

백중날에는 새악씨들이

생모치마 천진푀치마의 물팩지기 껑추렁한 치마에

쇠주푀적삼 항나적삼의 자지고름이 기드렁한 적삼에

한끝나게 상나들이 옷을 있는대로 다 내입고

머리는 다리를 서너 켜레씩 들어서

시뻘건 꼬둘채댕기를 삐두룩하니 해 꽂고

네날백이 따백이신을 맨발에 바꿔신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가는데

무썩무썩 더운 날에도 벌길에는

건들건들 씨언한 바람이 불어오고

허리에 찬 남갑사 주머니에는 오랫만에 돈푼이 들어 즈벅이고

광지보에서 나온 은장두에 바눌집에 원앙에 바둑에

번들번들하는 노리개는 스르럭스르럭 소리가 나고

고개를 몇이라도 넘어서 약물터로 오면

약물터엔 사람들이 백지일치듯 하였는데

붕가집에서 온 사람들도 만나 반가워하고

깨죽이며 문주며 섶가락 앞에 송구떡을 사서

 권하거니 먹거니하고

그러다가 백중 물을 내는 소내기를 함뿍 맞고

호주를 하니 젖어서 달아나는데

이번에는 꿈에도 못 잊는 붕가집에 가는 것이다

붕가집을 가면서도 칠월 그믐 초가을을 할 때까지

평안하니 집살이를 할 것을 생각하고

애끼는 옷을 다 적시어도 비는 씨원만 하다고 생각한다.






*물팩치기 :무릎

쇠주푀적삼 ; 명주실로 짠 적삼

자지고름 : 자주빛의 옷고름

꼬둘채댕기 : 빨강댕기

네날백이 : 세로줄로 네 가닥 날로 짠 짚신

따백이신 : 고운 짚신

광지보 : 광주리보자기

붕가집 ; 친구네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