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동잎 / 김 추 수 인동잎 - 김춘수 눈 속에서 초겨울의 붉은 열매가 익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는 보지 못한 꽁지가 하얀 작은 새가 그것을 쪼아 먹고 있다. 월동하는 인동잎의 빛깔이 이루지 못한 인간의 꿈보다는 더욱 슬프다. 詩 김춘수 2016.12.21
처서 지나고 / 김 춘 수 처서 지나고 김춘수 저녁에 가랑비가 내린다.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젖는다. 멀리 갔다가 혼자서 돌아오는 메아리처럼 한 번 멎었다가 가랑비는 한밤에 또 내린다. 태산목 커다란 나뭇잎이 새로 한 번 젖는다. 새벽녘에는 할 수 없이 귀뚜라미 무릎도 젖는다. 詩 김춘수 2016.08.25
물망초 / 김 춘 수 물망초 - 김 춘 수 부르면 대답할 듯한 손을 흔들면 내려올 듯도 한 그러면서 아득히 먼 그대의 모습, -하늘의 별일까요? 꽃피고 바람 잔 우리들의 그 날, - 나를 잊지 마셔요, 그 음성 오늘 따라 더욱 가까이에 들리네 들리네. 詩 김춘수 2016.04.09
유월에 / 김 춘 수 유월에 - 김 춘 수 빈 꽃병에 꽃을 꽂으면 밝아오는 실내의 그 가장자리만큼 아내여, 당신의 눈과 두 볼도 밝아오는가, 밝아오는가, 벽인지 감옥의 창살인지 혹은 죽음인지 그러한 어둠에 둘러싸인 작약 장미 사계화 금잔화 그들 틈 사이에서 수줍게 웃음짓는 은발의 소녀 마가렛을 빈 꽃.. 詩 김춘수 2015.06.20
나의 하느님 / 김 춘 수 *생강나무 나의 하느님 - 김 춘 수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늙은 비애悲哀다 푸주깐에 걸린 커다란 살점이다 시인詩人 릴케가 만난 슬라브 여자女子의 마음속에 갈앉은 놋쇠 항아리다 손바닥에 못을 박아 죽일 수도 없고 죽지도 않은 사랑하는 나의 하느님, 당신은 또 대낮에도 옷.. 詩 김춘수 2015.03.29
능금 / 김 춘 수 능금 - 김 춘 수 1 그는 그리움에 산다 그리움은 익어서 스스로도 견디기 어려운 빛깔이 되고 향기가 된다 그리움은 마침내 스스로의 무게로 떨어져 온다 떨어져 와서 우리들의 손바닥에 눈부신 축제의 비할바 없이 그윽한 여운을 새긴다 2 이미 가 버린 그 날과 아직 오지 않은 그 날에 머.. 詩 김춘수 2013.10.03
西風賦(서풍부) / 김 춘 수 西風賦(서풍부) - 김 춘 수 -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 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 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냄새를 .. 詩 김춘수 2013.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