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 상사화
고대(苦待)
- 한 용 운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해가 저물어 산 그림자가 촌 집을 덮을 때에
나는 기약없는 기대를 가지고
마을 숲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소를 몰고 오는 아이들의 풀잎피리는 제 소리에 목마칩니다
먼 나무로 돌아가는 새들은 저녁 연기에 헤엄칩니다
숲들은 바람과의 유희를 그치고 잠잠히 섰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동정하는 표상입니다
시내를 따라 굽이친 모랫길이 어둠의 품에 안겨서 잠들 때에,
나는 고요하고 아득한 하늘에 긴 한숨의 사라진 자취를 남기고,
게으른 걸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신은 나로 하여금 날마다 날마다 당신을 기다리게 합니다
어둠의 입이 황혼의 엷은 빛을 삼킬 때에,
나는 시름없이 문밖에 서서 당신을 기다립니다
다시 오는 별들은 고운 눈으로 반가운 표정을 빛내면서,
머리를 조아 다투어 인사합니다
풀 사이의 벌레들은 이상한 노래로, 백주(白晝)의 모든
생명의 전쟁을 쉬게 하는 평화의 밤을 공양합니다
네모진 적은 못의 연잎 위에 발자취 소리를 내는 실없는
바람이 나를 조롱할 때에 나는 아득한 생각이 날카로운
원망으로 화(化)합니다
'한용운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이 아니더면 / 한 용 운 (0) | 2013.12.05 |
---|---|
첫키스 / 한 용 운 (0) | 2013.11.12 |
그를 보내며 / 한 용 운 (0) | 2013.11.04 |
나는 잊고저 / 한 용 운 (0) | 2013.10.25 |
복종 / 한 용 운 (0) | 2013.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