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의 말

허무의 매혹 / 장 그리니에

자연을 바라보다 2014. 11. 15. 00:30








허무의 매혹


                                                           - 장 그리니에





그때 내 나이 몇이던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였으리라

어느 보리수나무의 그늘 아래 길게 누워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하늘이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허공 속으로 삼켜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無에 대해서

처음으로 느낀 인상이었다





누군가 살아가노라면,

무엇보다도 그 삶의 첫 시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을 다시 맞게 되기란 쉽지 않다

그 순간은 수많은 시간들의 퇴적 아래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시간들이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스쳐지나갔지만,

티끌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갔다는 것은

정말 섬뜩하다

그렇다고 그 순간이 언제나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걸쳐

내내 지속되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지없이 평범할 뿐인 세월들을

오묘한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장 그리니에<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