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의 매혹
- 장 그리니에
그때 내 나이 몇이던가?
여섯 살인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였으리라
어느 보리수나무의 그늘 아래 길게 누워서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그 하늘이 갑자기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허공 속으로 삼켜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바로 내가 無에 대해서
처음으로 느낀 인상이었다
누군가 살아가노라면,
무엇보다도 그 삶의 첫 시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순간을 맞는다
그 순간을 다시 맞게 되기란 쉽지 않다
그 순간은 수많은 시간들의 퇴적 아래 깊이 묻혀 있다
다른 시간들이 그 위로 헤아릴 수 없이 스쳐지나갔지만,
티끌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갔다는 것은
정말 섬뜩하다
그렇다고 그 순간이 언제나 한 줄기 빛과 같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유년기와 청년기에 걸쳐
내내 지속되면서 겉으로 보기에는
그지없이 평범할 뿐인 세월들을
오묘한 무지갯빛으로 물들이기도 한다
장 그리니에<섬>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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