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야기

오래된 농담 / 천 양 희

자연을 바라보다 2016. 8. 17. 01:00







오래된 농담

 

                                                   - 천양희

 

 


회화나무 그늘 몇 평 받으려고

언덕길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 끝을 보다

신혼의 첫밤을 기억해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그늘보다 몇 평이나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한다

그럼,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러니 무거울 수밖에

굵은 주름이 나이테보다 더 깊어 보였다

 

 



굴참나무 열매 몇 되 얻으려고

언덕길 오르다 늙은 남편이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열매 가득한 나무 끝을 보다

자식농사 풍성하던 그날을 기억해낸

늙은 아내가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열매보다 몇 알이나 더 작아져선

나, 생각보다 가볍지? 한다

그럼, 가볍지

머리는 비었지 허파엔 바람 들어갔지 양심은 없지

그러니 가벼울 수밖에

두 눈이 바람 잘 날 없는 가지처럼 더 흔들려 보였다

 

 


농담이 나무그늘보다 더더 깊고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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