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야기

비망록 / 김 경 미

자연을 바라보다 2013. 9. 9. 00:30






 

 

 

 



* 해바라기

꽃말 : 그리움. 기다림






비망록


                                       - 김 경 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 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졸이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 주려 노력하지

않는 거만한 술래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 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 나가 문 열어

보면 아무일 아닌듯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 더 행복해져도 괜찮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 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 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 지우지 않도록.





'시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 사랑 내 사랑 / 오 탁 번  (0) 2013.09.13
열애 / 신 달 자  (0) 2013.09.10
바람 부는 날 / 김 종 해  (0) 2013.09.02
박꽃 / 신 대 철  (0) 2013.08.30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 김 용 택  (0) 2013.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