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속에 있는 수선화를 기다린다
- 이생진
겨울에 피는 수선화가 좋아
나처럼 혼자여서 좋아
매화처럼 나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흙속에서 나왔기에 흙냄새가 나서 좋아
죽은 사람과 살다 나와서 좋아
팔월은 수선화가 흙속에 묻혀 있는 시기여서
수선화는 수평선을 땅속에서 보겠지
수평선을 보며 자란 수선화
구엄리 수선화는 유명하니까
수선화도 수평선을 잊지 못해 밤마다 꿈을 꿀거야
구엄리는 수선화도 유명하니까
수평선도 수선화를 잊지 않으려고 꿈을 꿀거야
수선화의 꿈엔 흙이 묻었고 수평선의 꿈엔 물이 묻었어
구엄리는 꿈이 아름다워
해안도로를 질주하다가도 수평선 때문에 차를 세워 놓고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또 질주하던 사람
어디선가 꿈을 꿀거야
수평선에 뜬 수선화
나는 GNP가 늘어나는 것 보다 수평선이 늘어나는 것이 좋아
수평선은 사라진 것의 소실선
하늘로 사라진 것들의 소실점
수선화는 땅으로 사라진 것들의 소실점
두 소실점을 뛰어넘으면 소실되지 않은 것이 꼬리를 잡히겠지
나는 수선화의 뿌리처럼 모질게 살다 남은 봄을 기다리고 있어
돌아오지 않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다리려 하니 기가 막혀
나는 수선화 앞에 서면 어미 잃은 강아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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