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문정희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 문 정 희

자연을 바라보다 2017. 5. 26. 08:40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문정희>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

특별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

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입시에도 무난히

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감자국을 끓이고 있을까

사골을 넣고 세 시간 동안 가스불 앞에서

더운 김을 쏘이며 감자국을 끓여

퇴근한 남편이 그 감자국을 15분 동안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을 행복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설거지를 끝내고 아이들 숙제를 봐주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도 입사 원서를 들고

추운 거리를 헤매고 있을까

당 후보를 뽑는 체육관에서

한복을 입고 리본을 달아주고 있을까

꽃다발 증정을 하고 있을까

다행히 취직해 큰 사무실 한켠에

의자를 두고 친절하게 전화를 받고

가끔 찻잔을 나르겠지

의사 부인 교수 부인 간호원도 됐을 거야

문화 센터에서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고는 남편이 귀가하기 전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갈지도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을까

저 높은 빌딩의 숲,국회의원도 장관도 의사도

교수도 사업가도 회사원도 되지 못하고

개밥의 도토리처럼 이리저리 밀쳐져서

아직도 생것으로 굴러다닐까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

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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