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마음을 비우라고 하나
- 천 양 희
잎새에도 바람이 일고
나무도 꽃을 피우려고 온 몸에 힘을 쓰는데
누가 나더러
마음을 비우라고 하나
마음 한번 제대로 쓴 적 없고
잘못 쓴 마음 고친 적 없는데
누가 내 마음의 공터를 뒤져놓았나
마음이 감춘 격렬한 괴로움들
불덩이를 삼킨 뜨거운 후회들
내려놓지도 못하는 나더러
누가 자꾸 마음을 비우라고 하나
마음! 하고 쓰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내 마음이
나를 다시 쓰네
마음에도 지도가 있고
마음은 마음에게로 가는 길이 있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마음 놓치면
눈뜨고 있어도 날은 어두워
마음먹고 돌아서도
배고픈 마음인데
마음아, 몸이 있어서 춥나?
마음은 언제나
나를 골백번도 더 죽였으나
이 지독한 마음의 파란만장
만장처럼 펄럭일 때
나도 마음을 꽃처럼 피우고 싶은 사람이다
마음 비우는 건 피우는 것과 달라
무엇을 비워서 마음을 펼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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