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고은

객혈(喀血) / 고 은

자연을 바라보다 2015. 12. 10. 01:00







객혈(喀血)    



                                                            - 고 은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괴로움을

또한 첫눈을 노래하자




한 마리의 밤새가 되어

대낮 가득히 노래하자




아무리 바라보아도 어제의 하늘일 뿐
저 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내 가슴에서는 눈 쌓인다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혼자도 괴로우면 여럿이구나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나는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고

오직 눈 먼 산보며 사랑하였다

아아 첫눈이 내리므로 노래하자 쓰러지자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에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거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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