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혈(喀血)
- 고 은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괴로움을
또한 첫눈을 노래하자
한 마리의 밤새가 되어
대낮 가득히 노래하자
아무리 바라보아도 어제의 하늘일 뿐
저 하늘에는
눈이 내리고 내 가슴에서는 눈 쌓인다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혼자도 괴로우면 여럿이구나
아아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저물기 전에 노래하자
나는 누구한테도 사랑받을 수 없고
오직 눈 먼 산보며 사랑하였다
아아 첫눈이 내리므로 노래하자 쓰러지자
이제 바라보노라
지난 것이 다 덮여 있는 눈길을
온 겨울을 떠돌고 와
여기 있는 낯선 지역을 바라보노라
나의 마음속에 처음으로
눈 내리는 풍경
세상은 지금 묵념의 가장자리
지나 온 어느 나라에도 없었던
설에이는 평화로서 덮이노라
바라보노라 온갖 거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을
눈 내리는 하늘은 무엇인가
내리는 눈 사이로
귀 기울어 들리나니 대지의 고백
나는 처음으로 귀를 가졌노라
나의 마음은 밖에서는 눈길
안에서는 어둠이노라
온 겨울의 누리 떠돌다가
이제 와 위대한 적막을 지킴으로써
쌓이는 눈 더미 앞에
나의 마음은 어둠이노라
'詩 고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꽃 / 고 은 (0) | 2016.04.20 |
---|---|
대보름날 / 고 은 (0) | 2016.02.22 |
순간의 꽃 / 고 은 (0) | 2014.04.25 |
눈물 / 고 은 (0) | 2014.03.27 |
강설(降雪) / 고 은 (0) | 2014.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