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날
- 고 은
정월 대보름날 단단히 추운 날
식전부터 바쁜아낙네
밥손님 올 줄 알고
미리 오곡밥
질경이나물 한 가지
사립짝 언저리 확 위에 내다 놓는다
이윽고 환갑 거지 회오리처럼 나타나
한바탕 타령 늘어놓으려 하다가
오곡밥 넣어가지고 그냥 간다
삼백예순 날 오늘만 하여라 동냥자루 불룩하구나
한바퀴 썩 돌고 동구 밖 나가는 판에
다른 거지 만나니
그네들끼리 무던히도 반갑구나
이 동네 갈 것 없네 다 돌았네
자 우리도 개보름 쇠세 하더니
마른 삭정이 꺾어다 불놓고
그 불에 몸 녹이며
이 집 저 집 밥덩어리 꺼내 먹으며
두 거지 밥 한 입 가득히 웃다가 목메인다
어느새 까치 동무들 알고 와서 그 부근 얼쩡댄다
'詩 고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꽃 / 고 은 (0) | 2016.04.20 |
---|---|
객혈(喀血) / 고 은 (0) | 2015.12.10 |
순간의 꽃 / 고 은 (0) | 2014.04.25 |
눈물 / 고 은 (0) | 2014.03.27 |
강설(降雪) / 고 은 (0) | 2014.01.10 |